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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광법상 지정된 도시권 인구수를 서울특별시, 또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서울'의 인구로 서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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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의 어원 === '서울'은 본래 [[한국어]]의 [[순우리말]]로서 '한 나라의 수도(首都)', 곧 '국도(國都)'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그래서 [[京]](서울 경), [[邯]](조나라 서울 한), [[鄲]](조나라 서울 단) 등의 한자의 훈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현대 한국인 학습자들은 서울특별시와 [[훈을 혼동하기 쉬운 한자|훈을 혼동]]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또한 모두 '수도'를 가리키는 한자들이다.] 영어로 표기하면 'Capital City' 정도가 된다. 따라서 고유명사로서의 쓰임과 별개로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 D.C.]]이다', '[[영국]]의 서울은 [[런던]]이다', '[[조선]]의 서울은 [[한양]]이다'로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은유법]]이 아니다. 실제로 옛날에 출판된 책들을 보면 이런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달'을 '위성'이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쓰는 것과 같은 예.] 다만 1946년 지명이 '경성부'에서 '서울시', 다시 '서울특별자유시'로 바뀐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고 고유명사 '서울(특별시)'의 용례가 대두되어 일반명사인 '서울'은 일상 회화에서는 점차 [[사어|쇠퇴]]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서울'이라고 하면 지명인 '서울특별시'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유명사가 된 보통명사|고유명사가 된 일반명사]]의 사례이다. 남한의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 일반구, 행정시 등 시군구 이상 행정구역 중에서 유일한 고유어([[순우리말]]) 지명이기도 하다.[* 동읍면까지 내려가면 [[세종특별자치시]]의 [[소담동]], [[도담동]], 한솔동 등 [[순우리말|고유어]] 지명이 몇몇 더 있다. [[북한]]에는 자체로 명명한 지명들 중 [[새별군]] 같은 순우리말 지명이 있긴 하나, 거의 다 김씨일가를 찬양하는 단어들이므로 별 의미는 없다.] '서울'이라는 어휘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학설이 있다. * 국어학계에서는 대개 서울이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徐羅伐)'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정연식(2018)[[https://m.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1a0202e37d52c72d&control_no=619234ca66332820c85d2949c297615a&keyword=|#]], "신라의 초기 국호 사라벌[徐羅伐\]과 시라[斯盧\]의 뜻", 동아시아 문화연구 제72호, 13-50쪽; 권인한(2008)[[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56046|#]], "신라국호(新羅國號) 이표기(異表記)와 고대한국어(古代韓國語) 음운현상(音韻現象)의 전개(展開)", 구결연구 제20권, 179-211쪽.][*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956#section-1|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history.seoul.go.kr/archive/content.do?key=2211240006|서울역사편찬원]],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28236?sid=103|경향신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431115?sid=100|매일경제]]] * 서라벌(徐羅伐)은 [[고대 한국어]]의 [[순우리말]]을 음역한 것이다. 그때도 한자어 서라벌(徐羅伐)을 지금과 같이 서라벌로 읽었을지 아니면 다르게 읽었을지는 명백하지 않지만, 현대의 발음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참고로 서라벌을 [[서벌]](徐伐)로 표기한 기록도 있다.[* 서야벌(徐耶伐) 역시 서라벌과 같은 단어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耶]]의 상고 한어 음가가 /*laː(라)/로 재구되며, 가야(加耶)가 가라(加羅)로 기록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야'와 '라'는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서로 통하는 표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시대의 서라벌, 서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셔ᄫᅳᆯ → 셔울 → 서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용비어천가]]》에서는 한자 [[京]]에 대응되는 고유어를 '셔ᄫᅳᆯ'로 기록하고 있으며[* 셔ᄫᅳᆯ 긔벼를 알ᄊᆡ ᄒᆞᄫᆞᅀᅡ 나ᅀᅡ가샤 모딘 도ᄌᆞᄀᆞᆯ 믈리시니ᅌᅵ다(詗此'''京'''耗 輕騎獨詣 維彼勅敵 遂能退之) 등의 대목에서 등장한다. [[https://find.xn--gt1b.xyz/search?term=sye.Wul&ignoreSep=yes|#]] [[https://kostma.aks.ac.kr/classic/gojunTextView.aspx?dataUCI=G002+CLA+KSM-WC.1612.0000-00000000.0007&dataId=0007_005_014_009|한국고전원문자료관]], [[https://opendict.korean.go.kr/m/dicInfo?sense_no=198851|우리말샘]]], 《[[삼국유사]]》에서도 신라 국호 제정 기사에서 "지금 경(京)자의 뜻을 우리말로 서벌(徐伐)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y_001r_0020_0190_0050|#]] '서라벌'의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서라벌이 '금성(金城)'이라고도 불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명칭이 '쇠(金)'+'벌(野)'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라]]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도 서라벌, 사로국 등 'ㅅㄹ' 계통의 이름이 어원으로 추정되므로, '신라'와 '서울'이라는 두 낱말이 거슬러 올라가면 동일 어원인 셈이기도 하다.] *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의 이명이 '소부리(所夫里)'[* 부여의 지명이 '사비'와 '소부리'로 갈리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성팔족]] 중 하나이자 현지의 유력한 세력이었던 사(沙)씨와의 유사성을 근거로 사비는 현지의 고유지명이었고, 소부리는 그냥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물론 두 지명이 음가 ㄹ의 유무를 제외하면 음운적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므로, 같은 지명을 다른 방식으로 표기한 것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한 [[沙]]는 한국 고유어를 음차하기 위해 빈번하게 쓰였던 글자였기에 단지 한자가 같다는 것만으로 연관성을 섣불리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인데 이것이 '소벌'의 음차일 가능성이 있으며[* 한반도 중부 및 북부 지방에서 쓰인 성을 뜻하는 '홀(忽)'에 대응하는 어휘로 마한 지역에서는 '비리(卑離)'가 쓰였는데, 이것이 후기 백제어에선 '부리(夫里)'로 나타난다. 고량부리(古良夫里), 소부리(所夫里) 등이 그 예시이다. 또한 이 어휘는 사벌(沙伐), 서라벌(徐羅伐), 비자벌(比自伐) 등에 쓰였던 진·변한 지역의 '벌(伐)'과도 대응된다.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2777/1|#]] 참고로 '부리'와 '벌'의 차이에 대해서는 마한 지역에서 받침의 개음절적 경향이 더 강했던 결과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것이 변하여 서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만일 '소부리'가 서울의 실제 어원이었다면, 한반도에서 최초로 서울 지역을 [[위례성|수도로 삼았던]] 백제의 명칭이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된 셈이 된다. * 고구려의 지명에서도 현대 한국어 '서울'에 대응되는 어휘가 발견된다고 한다. 옛 예맥계 국가인 맥국(貊國) 등이 존재했던 강원도 북부 및 함경도 일대에서 창고를 수을(首乙)이라고 했는데, 이 단어를 한문으로 '서울 경(京)' 또는 '곳집 경(𢈴)'으로 번역했음을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지금의 [[강원도(북한)|강원도]] 안변군에 해당하는 경곡현(𢈴谷縣)을 수을탄(首乙呑)이라고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인들이 고상식 창고를 '부경(桴京)'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창고'와 '수도'를 뜻하는 고구려 어휘가 동일했으며, '술'~'수리'의 발음을 지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압록강 이북에서도 창암성(蒼嵓城)을 양암성(椋嵓城)이라고도 한 것으로 보아 푸를 창(蒼)과 푸조나무 량(椋)의 훈독이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모두 '부소'라는 음가를 지녔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부여계 언어인 옛 백제 사비성의 성곽 역시 '[[부소산성]]'이라 불리는 것을 보면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의 경우 상술한 '서라벌' 및 '소부리'와 달리 '서울' 의 '서'에 대응되는 부분만 확인되고 '울(←ᄫᅳᆯ)' 에 대응되는 어휘가 기록되지 않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 [[고려]]의 전신인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의 고유어 지명 '쇠벌'이 서울이 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이쪽도 서라벌과 같이 '철원'을 쇠 철([[鐵]])에 벌 원([[原]])으로 분석한 것이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통일 이전 철원의 한자 표기는 '鐵原'이 아닌 '鐵圓'이었으며, '모을동비(毛乙冬非)'라는 고유어 지명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두 명칭이 같은 지명의 이표기였을 것이라 추정하여 '텰두르비'의 음역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실제로 철(鐵)의 옛 한자음인 '텰'은 한자 모(毛)에 대응되는 고유어 '털'과 유사하며, 둥글다[圓]는 뜻의 [[중세 한국어]]는 '두렵다'였으므로 역시 '두르비'와 유사하다. 이를 따른다면 [[철원]]은 '쇠벌'보다는 '쇠둥긂'을 뜻하는 지명이 되어 '서울'의 어원과는 무관해지게 된다. * 이외에도 고구려의 '[[졸본]]', 발해의 '[[솔빈부|솔빈]]', 고려의 수도 [[개성시|개성]]의 옛 이름인 '송악'의 이명 '송도(솔벌)' 역시 어원의 후보로 제기되고 있다. 서라벌에서 '라'의 탈락이 제대로 설명되었지 않다고 보는 경우 본 가설을 비롯해 위에서 설명한 여러 이설들 중 하나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다만 앞서 서술했듯 '서벌(徐伐)'이라는 표기 또한 삼국유사에 나타나므로 '라'의 탈락은 이미 한글 창제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권인한(2008)에서는 '서라벌'이 '서벌'을 거쳐 '셔ᄫᅳᆯ'로 변화한 과정을 일찍이 도수희(1987)에서 논의되었던 어말 모음 탈락 현상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위 설들은 모두 비정하는 지역에 차이가 있으나, 어떤 지역에서 사용되는 고유/일반명사가 일반명사 '서울'이 되었고, 후세에 다시 '서울특별시'를 지정하면서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점이 같다.[* [[양주동]], 도수희[[http://archive.baekje-heritage.or.kr/site/kr/html/sub2/020101.html?mode=V&card_id=1473|#]]처럼 신라의 서라벌과 백제의 소부리가 아예 동계 어휘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으나, [[백제어]]와 [[신라어]]가 동계였는가에 대해서는 학계의 주장이 엇갈린다. 참고로 고고학 등을 근거로 하여 삼국 모두 결국 [[예맥]]계가 주류가 되어 토착민을 정복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보는 건 같다. 물론 수렴진화의 경우처럼 우연히 비슷한 형태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 * 원로 배우 [[오현경(1936)|오현경]]이 들은 얘기로는 [[정도전]]이 [[태조(조선)|태조 이성계]]를 모시고 [[북악산]]에 올라갔을 때, 그때가 3월이라 주변 산에 모두 눈이 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땅이 마치 눈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설울'이라고 했다가 서울이 되었다고 한다. 오현경은 서울 출신으로, 적어도 그때까지 그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https://youtu.be/fb9D5yoxTM4?t=22|#]]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지, 이러한 설이 실제로 사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민간어원]]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여말선초에 '설울'이라는 말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15세기 기준 [[雪]]의 한국 한자음은 '셜'이었고 '울타리'를 뜻하는 '울'의 어형은 '[[ㅎ 말음 체언|욿]]'이었으므로 '서울'의 15세기 어형 또한 '셜욿'~'셔욿'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447년]]경 편찬된 《[[용비어천가]]》에서는 한자 [[京]](서울 경)에 해당하는 고유어가 분명히 '셔ᄫᅳᆯ'로 나타나고 있다. 중세 국어 어휘에서 [[ㅸ]]은 대체로 [[ㅂ]]이 약화된 결과로 파악되는데, 만일 태조 [[이성계]]가 살던 [[14세기]] 말부터 서울이 '셜욿'의 형태로 존재했다면 조선 건국 이래 50년 넘게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순경음 ㅂ이 난데없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신라의 '서라벌' 혹은 백제의 '소부리'를 어원으로 제시한다면 [[ㅂ]]이 약화되어 '셔ᄫᅳᆯ'의 [[ㅸ]]이 된 것이라는 명쾌한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소개한 《삼국유사》와 《용비어천가》의 기록 외에도, 수많은 [[15세기|15]]~[[16세기]] 한글 문헌을 살펴보면 당대에 이미 '서울'을 수도라는 의미의 일반명사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서울이 등장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이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사용된 대표적인 기록으로 불경 언해본 《[[월인석보]](1459)》와 [[두보]]의 시집 언해본 《[[두시언해]](1481)》등을 들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울을 지금처럼 음차하여 '徐蔚(서울)', '徐兀(서올)'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해좌전도'의 경우 '경(京)'이란 낱말로 서울을 지칭했는데, 한국어에서 단일 한자로 된 '지명'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이를 서울이라고 훈독했다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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