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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광법상 지정된 도시권 인구수를 서울특별시, 또는 수식어가 붙지 않은 '서울'의 인구로 서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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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표 내 서울특별시의 영문명을 'Seoul Special Metropolitan City'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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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 변천사 === [include(틀: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변천사)] 고대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한강을 낀 데다 드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삼국시대]]에는 원래 [[백제]]의 수도였으나 치열한 국경 전쟁을 거쳐 [[고구려]], 이후 [[신라]]의 땅이 되었다. 세 국가 모두 서울 지역을 가졌을 때 전성기를 맞았다.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 가문의 연고지인 [[개성시|개성]]을 수도로 삼았지만 이후 남경(서울) 천도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추진 시기와 맞물려 국운이 기울면서 유야무야되었다. [[고려]]에 이어 [[조선]]이 개국한 후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서울은 다시 한반도 국가의 수도가 되었고, 조선 왕조는 물론 대한제국까지 500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삼았다. 일제 때 잠시 [[경성부]](京城)로 개칭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 망명정부를 꾸렸지만, 명목상 수도는 서울로 두었다. 1946년에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서울'로 개칭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정부]]수립 이후에 그대로 수도가 되었다. [[북한]]도 1948년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규정했으며, 1972년 헌법을 개정해 수도를 [[평양시|평양]]으로 바꿀 때까지 명목상의 수도를 서울이라 했다. 다만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한양]] 또는 [[한양|한성]]이라고만 불렀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라 부르다가 해방 후 서울로 불렀다" 라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한성부]] 또는 [[경성부]]라는 명칭은 공부상의 공식 지역 명칭이었을 뿐이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저 입말로 서울이라 불렸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서울이 일반명사에서 점차 고유명사가 되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꽤나 길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나온 [[하멜 표류기]]에도 서울은 Sior로 표기되어 있다. 1896년 발행된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발행지를 “'''조선 서울'''”로 적어 ([[대한제국]] 수립 이후 “대한 서울” 또는 “대한 황성”이라고 기재해) 발행했으며, 해당 신문의 영문판 역시 발행지를 “'''SEOUL, KOREA'''”로 기재하였다. 아울러 1899년 서울에서 최초로 개통된 [[전차]] 역시 태극 마크와 함께 “ELECTRIC DE SEOUL”이라는 현판을 달고 달렸다. 일제 강점기 한성부가 경기도 경성부로 개칭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920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창간호를 보면 창간호부터 신문의 영문 타이틀을 보면 THE DONG-A DAILY, SEOUL, 즉 경성의 일본식 표현인 'KEIJO'가 아니라 'SEOUL'로 표기하고 있고 동 창간호에서 '서울호텔'이라는 등의 '서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1920년 4월 2일자 제2호의 영문기사에서도 Seoul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일제시대 때 제작된 영화 '반도의 봄'(1942)을 봐도 일본어 자막으로는 경성이라고 하지만, 한국어 대사로는 서울이라고 말한다.[[https://youtu.be/XFrAzAUoI1s&t=2088|#]] 따라서 [[조선 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사극의 등장인물들은 서울을 [[한양]]이나 [[경성부]]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증에 맞는 자연스러운 설정일 수 있다. [[근세]] 이후 '서울'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역사에 대하여는 [[서울특별시/역사#s-2|역사]] 문서 참고. 이름을 바꾸고자 한 시도도 있었다. 외솔 [[최현배]]는 [[1955년]] "서울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에 불과하므로 서울의 공식 명칭을 그저 서울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라고 생각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서울의 이름을 고치자고 건의했고 이승만도 생각 끝에 이름 공모를 했다. 그런데 이때 아첨꾼들이 이승만의 [[아호]]인 "'''우남'''(雩南)"을 서울의 새 이름으로 삼자고 주장한 것. 물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따온 [[워싱턴 D.C.]]의 사례를 들어서 제안한 것이었으나, 이를 들은 외솔이 장난치냐면서 길길이 날뛴 데다가, 이승만 본인조차도 "[[누르술탄|내가 봐도 우남은 아닌 거 같다.]]"라고 생각하여 거부했고, 직접 '''한도(韓都, 한국의 수도)'''라는 이름을 대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당선되면서 이 계획은 유야무야되면서 서울은 그저 서울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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