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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F
정식 명칭
Real Madrid Club de Fútbol
Los Blancos (하얀색)
Los Merengues (머랭)
Los Vikingos (바이킹)
La Casa Blanca (하얀 집)
Reyes de Europa (유럽의 왕)
팬 애칭
약칭
RMA
창단
창립자
훌리안 팔라시오스 (Julian Palacios)
후안 파드로스 (Juan Padrós)
구단 형태
소속 리그
연고지
홈구장
베르나베우
(Bernabéu / 83,186석)
훈련 시설
리저브 클럽
라이벌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 (Florentino Pérez)
부회장
페르난도 페르난데스 타피아스
(Fernando Fernandez Tapias)
CEO
호세 앙헬 산체스 (José Ángel Sánchez)
풋볼 디렉터
산티아고 솔라리 (Santiago Solari)
이사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Emilio Butragueño)
앰버서더
알바로 아르벨로아 (Álvaro Arbeloa)
호베르투 카를루스 (Roberto Carlos)
명예 회장
피리 (Pirri)
명예 회원
프란시스코 헨토 (Francisco Gento)
라파엘 나달 (Rafael Nadal)
페르난도 알론소 (Fernando Alonso)
카를로스 사인츠 (Carlos Sainz)
알레한드로 산스 (Alejandro Sanz)
루카 돈치치 (Luka Dončić)
감독
주제 무리뉴 (José Mourinho)
수석 코치
주앙 트랄량 (João Tralhão)
주장단
C
8 페데리코 발베르데 (Federico Valverde)
VC
7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Vinícius Júnior)
3C
1 티보 쿠르투아 (Thibaut Courtois)
4C
11 호드리구 고이스 (Rodrygo Goes)
UEFA 랭킹
3위 출처
역대
한국인 선수
공식 웹사이트
팬 커뮤니티
우승 기록
라리가
(36회 / 최다)
1931-32, 1932-33, 1953-54, 1954-55, 1956-57, 1957-58,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1966-67, 1967-68, 1968-69, 1971-72, 1974-75, 1975-76, 1977-78, 1978-79, 1979-80,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1996-97,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11-12, 2016-17, 2019-20, 2021-22, 2023-24
1905, 1906, 1907, 1908, 1917, 1934, 1936, 1946, 1947, 1961-62, 1969-70, 1973-74, 1974-75,
1979-80, 1981-82, 1988-89, 1992-93, 2010-11, 2013-14, 2022-23
1988, 1989, 1990, 1993, 1997, 2001, 2003, 2008, 2012, 2017, 2020, 2022, 2024
코파 데
라리가
[5]
(1회)
1984-85
코파 에바
두아르테
[6]
(1회)
1947
UEFA 챔피언스 리그
(15회 / 최다)
1984-85, 1985-86
UEFA 슈퍼컵
(6회 / 최다)
2002, 2014, 2016, 2017, 2022, 2024
2014, 2016, 2017, 2018, 2022, 2024
1960, 1998, 2002
라틴컵[8]
(2회 / 최다[9])
1955, 1957
구단 기록
[ 펼치기 · 접기 ]
최고 이적료 영입
주드 벨링엄 (Jude Bellingham)
(2023년, From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27M[10])
최고 이적료 방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2018년, To 유벤투스 FC, €117M)
최근 영입
덴젤 둠프리스 (Denzel Dumfries)
(2026년, From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M)
최근 방출
프란 가르시아 (Fran García)
(2026년, To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4M)
최다 출장
라울 곤살레스 (Raúl González) - 741경기
최다 득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 450골
최다 도움
카림 벤제마 (Karim Benzema) - 149도움
라리가 득점왕
(30회 / 최다)
마누엘 올리바레스 (Manuel Oliveras) - 16골 (1932-33)
파이뇨 (Pahiño) - 28골 (1951-52)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 27골 (1953-54)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 24골 (1955-56)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 31골 (1956-57)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 19골 (1957-58)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 23골 (1958-59)
페렌츠 푸스카스 (Ferenc Puskás) - 26골 (1959-60)
페렌츠 푸스카스 (Ferenc Puskás) - 27골 (1960-61)
페렌츠 푸스카스 (Ferenc Puskás) - 26골 (1962-63)
페렌츠 푸스카스 (Ferenc Puskás) - 20골 (1963-64)
아만시오 아마로 (Amancio Amaro) - 14골 (1968-69)
아만시오 아마로 (Amancio Amaro) - 16골 (1969-70)
후아니토 (Juanito) - 17골 (1983-84)
우고 산체스 (Hugo Sánchez) - 22골 (1985-86)
우고 산체스 (Hugo Sánchez) - 34골 (1986-87)
우고 산체스 (Hugo Sánchez) - 29골 (1987-88)
우고 산체스 (Hugo Sánchez) - 38골 (1989-90)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Emilio Butragueño) - 19골 (1990-91)
이반 사모라노 (Iván Zamorano) - 28골 (1994-95)
라울 곤살레스 (Raúl González) - 25골 (1998-99)
라울 곤살레스 (Raúl González) - 24골 (2000-01)
호나우두 (Ronaldo) - 25골 (2003-04)
뤼트 판니스텔로이 (Ruud van Nistelrooy) - 25골 (2006-07)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 40골 (2010-1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 31골 (2013-14)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 48골 (2014-15)
카림 벤제마 (Karim Benzema) - 27골 (2021-22)
킬리안 음바페 (Kylian Mbappé) - 31골 (2024-25)
킬리안 음바페 (Kylian Mbappé) - 25골 (2025-26)
UEFA 계수
랭킹 1위
[11]
(21회 / 최다)
1955-1960, 1956-1961, 1957-1962, 1958-1963,
1963-1968, 1987-1992, 1988-1993, 1989-1994,
1990-1995, 1996-2001, 1997-2002, 1998-2003,
1999-2004, 2000-2005, 2009-2014, 2010-2015,
2011-2016, 2012-2017, 2013-2018, 2014-2019,
2020-2025


목차
1. 개요2. 역사
2.1.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2.2. 시즌별 일람2.3. 역대 리그 순위2.4. 역대 엠블럼2.5. 역대 유니폼
3. 주요 인물4. 문화
4.1. 레알 마드리드 TV4.2. 응원가: Hala Madrid y Nada Más4.3. 네임드 마드리디스타
5. 선수단6. 코치진7. 보드진8. 평가
8.1. 위상8.2. UEFA 챔피언스 리그 내 위상8.3. 인기
9. 스폰서
9.1. 메인 스폰서9.2. 글로벌 스폰서9.3. 지역 스폰서
10. 라이벌리11. 관련 기록
11.1. 대회 기록11.2. 선수 기록
11.2.1. 최다 출장 기록11.2.2. 최다 득점 기록
11.3. 이적료
11.3.1. 최고 이적료 영입 기록11.3.2. 최고 이적료 방출 기록
11.4. 상대 전적
12. 이야깃거리
12.1. 관련 오해12.2. 명장의 무덤
12.2.1. 라몬 멘도사 재임기12.2.2. 로렌소 산스 재임기12.2.3. 플로렌티노 페레스 재임 1기12.2.4. 라몬 칼데론 재임기12.2.5. 플로렌티노 페레스 재임 2기
12.3. 스페인 대표팀과의 관계12.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의 관계12.5. 징크스12.6. 여담
13. 논란 및 사건 사고14.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언사15. 관련 문헌16.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스페인수도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 소속 리그는 라리가, 홈구장은 베르나베우이다.[12]

UEFA 챔피언스 리그, 라리가, FIFA 인터컨티넨탈컵 최다 우승 팀이자, 유러피언컵 5연패 및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유일한 구단이다.

이와 함께 역대 라리가 누적 승점 1위, 역대 UEFA 챔피언스 리그 누적 승점 1위, UEFA 계수 랭킹 최다 1위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29년 라리가 창설 이후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클루브와 더불어 단 한 번도 1부 리그에서 강등당하지 않았고, 아틀레틱 클루브와 유이하게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13] 또한 유럽의 220개 축구 클럽을 대변하는 유럽 클럽 협회의 창립 회원 열여섯 클럽 중 하나이다.

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에서 20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축구단 중에서는 가장 높은 구단이다.

스페인 구단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모든 선수들과 감독, 코치, 직원들까지 전부 스페인어를 사용해야 하며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은 스페인어 수업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2. 역사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 개별 문서가 있는 시즌 [편집]

2.2. 시즌별 일람 [편집]

2.3. 역대 리그 순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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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리그
순위
1928-2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29-3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5
1930-3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6
1931-3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32-3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33-3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34-3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35-3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36-37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중단
1937-38
1938-39
1939-4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40-4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6
1941-4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42-4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0
1943-4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7
1944-4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45-4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46-4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7
1947-4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1
1948-4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1949-5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50-5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9
1951-5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1952-5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1953-5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54-5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55-5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1956-5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57-5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58-5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59-6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60-6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1-6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2-6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3-6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4-6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5-6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66-6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7-6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8-6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69-7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6
1970-7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71-7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72-7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73-7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8
1974-7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75-7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76-7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9
1977-7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78-7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79-8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80-8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81-8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1982-8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83-8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84-8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5
1985-8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86-8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87-8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88-8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89-9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90-9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1991-9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92-9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93-9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94-9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95-9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6
1996-9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1997-9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1998-9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1999-0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5
2000-0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01-0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2002-0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03-0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4
2004-0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05-0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06-0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07-0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08-0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09-1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10-1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11-1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12-1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13-1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2014-1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15-1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16-17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17-18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2018-19
1
프리메라 디비시온
3
2019-20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20-21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21-22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22-23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23-24
1
프리메라 디비시온
1
2024-25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025-26
1
프리메라 디비시온
2

2.4. 역대 엠블럼 [편집]

2.5. 역대 유니폼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주요 인물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레전드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문화 [편집]

4.1. 레알 마드리드 TV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응원가: Hala Madrid y Nada Más[14]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곡
편곡[15]
뮤직비디오
가사
원문
한국어 번역
Historia que tú hiciste, historia por hacer
Porque nadie resiste, tus ganas de vencer
Ya salen la estrellas mi viejo chamartín
De lejos y de cerca, nos traes hasta aquí
Llevo tu camiseta, pegada al corazón
Los días que tú juegas, son todo lo que soy
Ya corre la saeta, ya ataca mi Madrid
Soy lucha soy belleza, el grito que aprendí
Madrid, Madrid, Madrid, ¡Hala madrid!
Y nada más, y nada más, ¡hala madrid!
네가 만든 역사, 네가 만들 역사
승리를 향한 네 욕망에 누구도 대항할 수 없기에
별들이 들어온다, 내 옛 차마르틴[16]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네가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준다
네 유니폼을 입고, 내 심장에 붙인 채로
네가 경기하는 날이 나의 전부이다
화살[17]이 달린다, 나의 마드리드가 공격한다
나는 투쟁이자 아름다움이다, 이 외침을 나는 배웠다
마드리드, 마드리드, 마드리드, 나아가자 마드리드!
아무것도 더 말고, 아무것도 더 말고, 나아가자 마드리드!
이 응원가는 라 데시마 달성 다음 날인 2014년 5월 25일에 공식 발표되었으며, 2014-15 시즌부터 현재까지 대표적으로 쓰이는 곡이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Hala Madrid!를 영어 발음 그대로 읽어 ‘할라 마드리드’라고 하는 팬이 상당히 많은데 스페인어는 H가 묵음이기 때문에 '알라 마드리드'가 맞는 발음이다.

4.3. 네임드 마드리디스타 [편집]

5. 선수단 [편집]

6. 코치진 [편집]

7. 보드진 [편집]

8. 평가 [편집]

8.1. 위상 [편집]

'FIFA 20세기 최고의 클럽' 트로피와 수여식 장면으로, 사진의 인물은 왼쪽부터 플로렌티노 페레스, 제프 블라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이다.[19]
축구라는 종목 그 자체를 대표하는 구단이자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스포츠 팀 중 하나이다. 축구계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위상은 어떤 클럽보다도 높으며 많은 축구 선수들이 가장 입단하고 싶어하는 클럽이다. 라리가 최다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20], FIFA 인터컨티넨탈컵 최다 우승, 공식 국제 대회 세계 최다 우승[21], UEFA 클럽 랭킹 최다 1위, FIFA 20세기 최고 클럽 선정, 유럽 5대 리그라 불리는 라리가, 프리미어리그, 세리에 A, 분데스리가 소속 클럽 중 최초 100회 우승 등 수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우선 유럽 전역을 통틀어 리그 우승 30회를 넘긴 클럽은 극히 드문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는 무려 36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5대 리그 최다 기록이다. #

또한 라리가뿐만 아니라 UEFA 챔피언스 리그 15회 우승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이다. 2024년 현재 기준, 1992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전후로 모두 최다 우승 팀이다. 개편 이전 유러피언컵 시대에 6회, 개편 이후 UEFA 챔피언스 리그 시대에 9회 우승을 기록했다. 게다가 우승 횟수뿐 아니라 통산 출전 횟수, 경기 수, 승, 승률, 승점, 득실 차, 8강 진출 횟수, 4강 진출 횟수, 결승 진출 횟수까지 준우승을 제외한[22] 모든 부문에서 가까운 시일 내엔 추월이 불가능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다. 또, 유일하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다.

자국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양쪽에서 압도적인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4대 리그 최다 우승 팀들인 리버풀[23],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를 모두 합해도[24]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 횟수보다 1회 적다.[25]

이러한 대단한 우승 기록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권위 높은 클럽 대회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쌓은 업적 덕분에 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FIFAIFFHS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클럽으로 선정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26]

우선 투표 방식으로 선정한 FIFA의 순위에서는 2위를 포함한 다른 클럽들이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을 넘기지 못한 가운데 혼자서만 42.35%를 쓸어 담았고, 좀 더 객관성을 고려하여 포인트 집계 방식을 채택한 IFFHS의 순위에서도 역시 2위 유벤투스를 97.5점이라는 큰 점수 차로 누르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국제 축구 연맹의 창설 100주년이었던 2004년에는 'FIFA 100주년 공로 훈장'을 클럽 부문에서 셰필드와 함께 받았다. 클럽 부문에서는 두 클럽만이 지목되어 이 훈장을 받았으며, 셰필드가 1857년에 창단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클럽으로서 축구계에 기여하였다면, 레알 마드리드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클럽으로서 축구계에 기여한 사실을 공인받은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곧바로 2001-02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는 등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었다. 이후 2004-05 시즌부터 2009-10 시즌까지 6년 연속 챔스 16강 탈락을 겪으며 '16강 마드리드'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지만,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여 이 징크스를 깬 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체제하에서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두 자릿수 우승에 도달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샬케 원정 6-1, 바이에른 뮌헨 원정 4-0 대승을 거둬 10년 넘게 승리가 없었던 독일 원정 징크스까지 극복해 위상을 완전히 되찾고 매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지네딘 지단 감독 체제에서는 개편 이후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면서 2위 그룹과의 격차를 더욱 벌렸고, 2022년과 2024년에는 각각 14번째와 15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리며 2위인 AC 밀란과의 격차를 2배 이상으로 벌렸다.

그리고 직전 5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매겨지는 UEFA 클럽 랭킹에서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팀이다. 랭킹 산정이 시작된 1979년부터 총 42시즌 중 15번 1위를 차지, 7번 1위에 오른 바르셀로나, 유벤투스를 상당히 큰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는 단순한 명문 클럽을 넘어 최고 클럽의 대명사격으로 쓰이고 있으며[27] 같은 리그의 바르셀로나와 함께 축구 선수의 대다수가 꿈꾸는 드림 클럽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그렇게 압도적인 리그, 챔스 우승 기록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인테르, 아약스, 파리, 셀틱, PSV 등의 클럽이 달성했던 트레블 기록이 없다. 그 수많은 챔스 우승 시즌 동안 트레블을 단 한 차례도 연을 맺지 못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28][29] 물론 각 리그 간의 수준 차이가 있으므로 트레블의 가치를 리그별로 일관성있게 평가할 수는 없으나, 압도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에도 불구하고 트레블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분명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 아쉬운 점 임은 분명 사실이다.

이는 코파 델 레이에서의 성적이 비교적 아쉬운 탓이 크다.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 20회로 역대 3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31회 우승을 차지한 라이벌 바르셀로나는 물론이고 24회 우승을 차지한 아틀레틱 클루브보다도 낮은 기록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 3회에 그치고 있다. 결승 진출 횟수가 아틀레틱보다 많은 40회인 것을 보면 평균적인 성적은 오히려 뛰어나다 할 수 있으나 그 중 준우승이 무려 20회인 것이 발목을 잡았다.[30]

상술한 근거들을 종합할 때, 세계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을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레알 마드리드를 고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8.2. UEFA 챔피언스 리그 내 위상 [편집]

각종 UEFA 챔피언스 리그 기록을 갖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유러피언컵 5연패를 달성한 유일한 팀이자, 개편 이후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유일한 팀이다. 특히 1992년 유러피언컵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된 후 레알 마드리드의 3연패 외에는 2연패조차 찾아볼 수 없다. 유러피언컵 초대 우승팀으로서 대회가 출범한 이래 아직까지 최다 우승팀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으며[32], 1992년 UCL 개편 전 6회 우승, 개편 후 9회 우승으로 두 시기 모두 최다 우승팀이다. 사실상 'UEFA 레알 마드리드 리그'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15회 우승 기록은 우승 횟수 2위[33]의 7회 우승과 3위[34]의 6회 우승을 합친 것보다 많으며, 세리에 A[35]분데스리가[36]를 비롯한 대다수 '리그'의 전체 우승 횟수를 능가하는 기록이다. 오직 프리미어 리그만이 15회 우승으로[37] 레알 마드리드와 동률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13회 우승을 달성한 당시에는 프리미어 리그도 12회 우승을 기록 중이었기 때문에 1년 간은 우승 횟수 순위에서 모든 '리그'가 레알 마드리드 아래에 있는 진풍경도 나왔다.

우승 횟수뿐 아니라 통산 출전 횟수, 경기 수, 승, 승률, 승점, 득점, 득실 차, 8강 진출 횟수, 4강 진출 횟수, 결승 진출 횟수까지, 준우승만을 제외한 모든 누적 기록이 1위이다. # 이 중 승률을 제외한 나머지 기록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추월이 불가능한 압도적 1위이다. 1992년 개편 이후부터 산정한 기록조차도 모든 스탯이 1위이다. #

누적 기록 외에도 최다 연속 참가[38][39], 최다 연속 우승과 최다 연속 결승 진출[40], 최다 연속 16강 진출[41], 최다 연속 4강 진출[42], 결승전 최다 연승[43][44], 개편 이후 유일한 3연패[45]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21-22 시즌 종료 시점 기준으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우승을 경험한 팀이고[46], 가장 많은 감독들이 우승을 경험한 팀이며[47], 득점왕을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48]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영구히 소장할 수 있는 조건인 '5회 우승'과 '3연속 우승'을 둘 다, 그것도 개편 전후에 각각 한 번씩 달성한 유일한 팀이다. 개편 전에는 초창기 5연속 우승으로 단번에 두 조건을 달성하여, 현재 쓰이는 현행 빅 이어 이전에 1965-66 시즌까지 쓰였던 구형 트로피를 영구히 소장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개편 후에는 2015-16 시즌부터 3연속 우승을 하면서 두 조건을 달성했다.[49]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넘버링을 하듯 '열 번째', '열한 번째' 같은 식으로 불린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가 9번째 우승에 성공해 사상 첫 두 자릿수 우승에 가까워지자, 스페인어로 '열 번째'를 뜻하는 '라 데시마'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다 실제로 10번째 우승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경우. 특정 팀이 우승할 때마다 그 우승에 순서가 이름으로 붙는 것 자체가 그 팀의 위상을 방증한다.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해를 살펴보면 유독 짝수 해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으며 홀수 해에 우승은 1956-57 시즌, 1958-59 시즌, 2016-17 시즌 세 차례에 불과하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3. 인기 [편집]

가장 많은 SNS 팔로워를 보유한 축구 클럽 (2026년 5월 기준)
라리가,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에 빛나는 우수한 성적과 갈락티코스로 대표되는 화려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최고 인기 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 팔로워 수에서도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타 클럽들을 압도하는 수치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유럽 전역,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팀으로 해당 지역 유망주들에게는 드림클럽으로서의 위상을 자랑한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모든 축구클럽 중 유일하게 매출 10억 유로를 달성하였다.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억 유로 이상 차이나는 압도적인 1위이며 03-04 시즌 이후 전세계 축구클럽 매출 순위에서도 한시즌을 제외하곤 2위밖으로 벗어난적이 없다. 포브스 선정 자료에서도 축구 클럽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SNS 팔로워 수는 인스타그램 약 1.6억 명, X 약 5100만 명, 틱톡 약 4500만 명, 유튜브 약 1790만 명이다.

다만 유럽 최고의 명문 구단이라는 위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1,2등을 다투는 인기에 비하면 대한민국에서의 인기는 생각보다 높지 않은 편이다. 이는 팀의 간판스타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떠나가며 호날두 팬덤이 상당수 이탈했고, 한국 해외축구 팬덤의 프리미어 리그 중심 성향과 라리가의 고질적인 시청 시간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9. 스폰서 [편집]

9.1. 메인 스폰서 [편집]

9.2. 글로벌 스폰서 [편집]

9.3. 지역 스폰서 [편집]

10. 라이벌리 [편집]

10.1. 엘 클라시코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 라이벌리의 출발점은 주안 감페르와 스페인을 쿠데타로 장악했던 리베라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리베라가 딱히 레알 마드리드를 지지한 것도 아니고, 감페르보다 리베라 정권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감페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원인은 리베라와의 대립이 아니라 세계 대공황의 여파였다.

문제는 스페인 내전 시기이다.[50] 이때의 대표적인 인물이 카탈루냐 독립파이자 강성 좌파인 주제프 수뇰(Josep Sunyol I Garriga)이다. 본래부터 정치가의 아들이면서 카탈루냐 좌익 정파였던 ERC(Esquerra Republicana de Catalunya)의 당원이기도 했으며, 좌익 언론 라 람블랴의 창립자이기도 했다. 수뇰은 1935년 카탈루냐 축구협회장이자 FC 바르셀로나 회장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에 카탈루냐 민족성에 더해서 반 정부 성향이 강해진 것이 이 시기였다. 그리고 1년 후인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고, 수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추종 세력에게 총살당한 후 암매장 되었다.[51][52] 이 사건으로 인해서 FC 바르셀로나와 수뇰은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반 프랑코 투쟁의 상징이 된다. 이전의 FC 바르셀로나는 에스파뇰을 포함한 이 지역 축구협회에 모두 관여하기도 하는 등 딱히 민족분리나 독립 성향이 강하지 않았으나,[53] 이 시기부터 FC 바르셀로나에 강경한 분리주의와 반 프랑코 성향이 본격화되었다.

스페인 내전이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총통의 자리에 오른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 국가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지역에서 지역색을 빼는 작업을 시작했고, 프랑코는 모든 축구단의 명칭이 스페인어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서 영어식으로 'Football Club'의 약자인 FC를 사용하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어 문법에 따른 명칭인 'Club de Futbol'의 약자인 CF로 바꾸어야 했다. 또한 1940년 프랑코의 지지자였던 엔리케 피녜이로[54]가 바르셀로나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전에는 바르셀로나 경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바르셀로나를 정치적 압력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피녜이로 회장 재임 시기인 1943년 6월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에는 노골적인 경기 조작이 있었다. 1차전 홈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3-0으로 승리한 뒤, 에스타디오 데 차마르틴에서 벌어진 원정 경기에서 11-1로 패배했던 것이다. 전반전이 시작하기 전 보안부장이 "니들이 경기 뛰는 건 위에서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협박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으며, 피녜이로는 이에 대해 항의하고 사임했다. 이후 바르셀로나 회장직은 프랑코 체제 임명 시기를 짧게 거치다가 오히려 강경한 대응이 더 문제를 야기한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카탈루냐 출신 임명을 거쳐서 자체 선임으로까지 변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스페인 축구 협회는 해당 경기를 무효로 처리했고, 이후에 회장에 취임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이후 1978년까지 이어진 프랑코 정권 아래에서 바르셀로나는 8번의 리그 우승, 10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한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1953-54 시즌 리그를 우승할 때까지 21년의 무관 세월을 보냈다는 점에서 프랑코가 실질적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지원한 것이 사실이냐는 의문도 존재한다. 레알 마드리드 CF/오해 문서에 이에 대한 글이 적혀 있으니 참고.[55]

그러나 프랑코의 스페인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우파 국가주의와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민족주의 + 좌파적 성향에 더해서 앞서 언급된 레알 마드리드 측에 유리한 승부조작 사건이 더해져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카스티야와 카탈루냐라는 해묵은 민족간 대립이 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영입 과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대립이 유명하다. 바르셀로나가 디 스테파노에게 먼저 접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개입으로 인해 끝내 스페인 축구 협회에서는 소유권을 공유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반발한 바르셀로나가 여러 이유로 인해 이를 포기하면서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선수 이적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56], 드물게 있었던 두 팀 간 이적에서 양 팀의 갈등을 극명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루이스 피구 사건이 있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부주장의 자리까지 오르며[57] 바르셀로나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피구 본인도 레알 마드리드를 디스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심장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2000년에 피구는 계약 파동 끝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피구와 에이전트가 주급 인상을 요구하며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이를 오가다 강제 이적 협상 허가 조항(바이아웃)을 발동한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결국 시즌이 지나고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인 캄 노우에서 엘 클라시코가 열린 날, 피구는 10만 꾸레들의 극심한 야유를 받게 되었다. 피구의 이적건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의 직접 이적으로 충격을 선사한 것이 컸기에 많이 회자되었다. 반대 사례로 루이스 엔리케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직접 이적한 전적이 있다. 직접 이적은 아니지만 한 다리 건너 나중에 이적하여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 사례 역시 있다. 사무엘 에투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 유망주 시절 1군에서 뛸 수 없어서 B팀과 임대를 전전하다가 2000년 RCD 마요르카로 이적 후 활약, 약 4년 뒤인 2004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게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는 선수가 이적할 시 차후에라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계약 안에 반드시 추가한다고 한다.

이렇듯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더비매치, 즉 엘 클라시코는 그 명성답게 화려하면서도 두 지역 간의 엄청난 악감정 때문에 누구 하나 작살날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로 진행되곤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주요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페인 대표팀이 2008 유로 - 2010 월드컵 - 2012 유로에서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두고 두 팀 선수들 사이에 스페인 국가대표라는 유대감이 생기면서 꽤 훈훈한 분위기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58] 그리고 외국인 용병들은 지역감정이나 팀 간의 적개심과는 별개로 본인이 좋아하는 상대 팀의 선수들과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레알 마드리드의 곤살로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가 있으면 맨 처음 하는 행동이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찾아가서 껴안고 뽀뽀하며 친밀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메시 역시 이렇게 행동하는 이과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엘 클라시코이기 이전에 같은 국적의 동질감 때문에 메시와 이과인, 더 나아가 디 마리아나 마스체라노 등 아르헨티나 선수들 모두가 엘 클라시코 라이벌임에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분이 깊다.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출신들이 아닌 데다 그냥 같은 국대 선수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이므로 팬들 역시 오히려 보기 좋다면서 신경쓰지 않는다.[59]

10.2. 데르비 마드릴레뇨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통적인 마드리드 지역 라이벌이다. 라리가 출범 이전 각 지역 대회와 코파 델 레이만 있던 시절엔 레알 마드리드가 압도적인 마드리드 지역 최강으로 군림하는 가운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그나마 대항을 하는 양상이었고, 193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는 아틀레티코가 레알 마드리드보다 강팀이라 이 시기에 아틀레티코가 리그 누적 우승 횟수에서 4:2로 앞섰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가 전성기를 맞이한 1950년대 중반부터 두 팀의 격차는 압도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며 마드리드 더비에서도 레알 마드리드가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흐름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2010년대에 아틀레티코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부임 후 다시 유럽 정상급 팀으로 성장하고 3년간 두 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마드리드 더비로 성사되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더비 매치다운 긴장감과 화제성을 되찾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0.3. 기타 구단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FC 바이에른 뮌헨
    유럽 무대를 대표하는 막상막하 라이벌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은 챔피언스 리그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맞붙은 두 팀이다. 그리고 바이에른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 공동 3위에 오른 명문인 만큼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경쟁심이 강한 편이다. 유럽의 클라시코, 유러피언 클래식 매치 등 여러 별명이 있다.

    두 팀은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에서만 자그마치 14번을 상대로 만났다. 아직 결승에서 만난 적은 없으나 13번 중 무려 8번이 4강 대진이었으며, 역대 토너먼트 결과는 바이에른 2연승→마드리드 2연승→바이에른 1승→마드리드 2연승→바이에른 2연승→마드리드 4연승이다. 그리고 13번 중 8번이 합계 1점 차 내 승부였고, 2013-14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가 합계 5-0으로 승리하기 전까지는 합산 점수 3점 차 이상 난 적이 없었으며, 한쪽이 무득점에 그친 적도 없었다. 상대 전적은 바이에른이 한동안 앞섰으나 2018년에 뒤집혔다. 2026년에 다시 상대 전적 동점을 만들었다.

    2010년대에는 2011-12, 2013-14, 2016-17, 2017-18까지 4번이나 만나면서 지긋지긋한 악연을 이어갔다. 2016-17 시즌 8강 추첨 때는 각 팀의 대표로 나온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안드레아스 융의 썩은 표정이 잡히기도 했다.
  • 유벤투스 FC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가장 많이 맞붙은 이탈리아 클럽이다. 1998년과 2017년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맞붙어 레알 마드리드가 두 번 다 우승을 차지했기에 유벤투스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공교로운 점은 1998년에 유벤투스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를 당했는데, 이것이 지단이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고, 2017년에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서 유벤투스에 다시 패배를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 발렌시아 CF
    전통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는 서포터들의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1996년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가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을 부인하는 인터뷰를 한 다음 날 레알 마드리드 이적 오피셜이 뜬 사건이 벌어지면서 발렌시아 측의 감정이 매우 험악해졌다. 게다가 미야토비치가 1998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7번째 우승을 결정짓는 골을 넣고 은퇴 후엔 단장까지 역임하는 등 구단 전설의 행보를 걸으면서, 두 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가 UCL 역대 우승 횟수 1위고 밀란은 역대 우승 횟수 2위다. 역대 전적은 6승 3무 6패 동률로 박빙이다. 과거에는 라이벌리급 매치였지만 2010년 이후 밀란의 암흑기로 인하여 공식 경기가 없다가, 2024-2025 챔피언스리그 리그페이즈 매치데이4에 만나 밀란이 3-1로 승리하였다.

11. 관련 기록 [편집]

11.1. 대회 기록 [편집]

※ 굵게 표시되어 있는 것은 최다 기록이다.
    • 우승: 36회
      1931-32, 1932-33, 1953-54, 1954-55, 1956-57, 1957-58,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1966-67, 1967-68, 1968-69, 1971-72, 1974-75, 1975-76, 1977-78, 1978-79, 1979-80,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1996-97,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11-12, 2016-17, 2019-20, 2021-22, 2023-24
    • 준우승: 25회
      1928-29, 1933-34, 1934-35, 1935-36, 1941-42, 1944-45, 1958-59, 1959-60, 1965-66, 1980-81, 1982-83, 1983-84, 1991-92, 1992-93, 1998-99,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2014-15, 2015-16, 2020-21, 2022-23
    • 우승: 20회
      1904-05, 1905-06, 1906-07, 1907-08, 1916-17, 1933-34, 1935-36, 1945-46, 1946-47, 1961-62, 1969-70, 1973-74, 1974-75, 1979-80, 1981-82, 1988-89, 1992-93, 2010-11, 2013-14, 2022-23
    • 준우승: 21회
      1902-03, 1915-16, 1917-18, 1923-24, 1928-29, 1929-30, 1932-33, 1939-40, 1942-43, 1957-58, 1959-60, 1960-61, 1967-68, 1978-79, 1982-83, 1989-90, 1991-92, 2001-02, 2003-04, 2012-13, 2024-25
    • 우승: 15회[60]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1965-66, 1997-98, 1999-00, 2001-02, 2013-14, 2015-16, 2016-17, 2017-18, 2021-22, 2023-24
    • 준우승: 3회
      1961-62, 1963-64, 1980-81
10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
    • 우승: 2회
      1984-85, 1985-86
    • 우승: 6회
      2002, 2014, 2016, 2017, 2022, 2024
    • 준우승: 3회
      1998, 2000, 2018
  • 코파 데 라리가[61]
    • 우승: 1회
      1984-85
    • 준우승: 1회
      1982-83
    • 우승: 13회
      1988, 1989, 1990, 1993, 1997, 2001, 2003, 2008, 2012, 2017, 2020, 2022, 2024
    • 준우승: 6회
      1982, 1995, 2007, 2011, 2014, 2023
  • 코파 에바 두아르테[62]
    • 우승: 1회
      1947

11.2. 선수 기록 [편집]

11.2.1. 최다 출장 기록 [편집]

11.2.2. 최다 득점 기록 [편집]

11.3. 이적료 [편집]

11.3.1. 최고 이적료 영입 기록 [편집]

11.3.2. 최고 이적료 방출 기록 [편집]

11.4. 상대 전적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이야깃거리 [편집]

12.1. 관련 오해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2. 명장의 무덤 [편집]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은 전 세계의 명장이 노리는 자리인데, 수뇌부의 인내심이 부족하여 부진이 찾아오면 얼마 안 돼서 해임 당하기 때문에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린다. 라리가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 3개의 대회에서 한 시즌에 못해도 1개는 꼭 따야 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엄청나게 큰 자리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오래 하려면 레알 수뇌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하며, 팬들에게는 '재미있고 화끈한 축구 구사' 내지는 '리그 우승 전력'을 시즌 내내 유지하여야 한다.

문제는 그걸 떠나서도 보드진이 지나치게 감독을 자주 바꾼다는 것이다. 1960년대 통산 595경기를 지휘한 전설적인 미겔 무뇨스[68]를 제외하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두 번째로 긴 임기 동안 연임한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한 경기 수가 고작 233경기, 1999~2003 4시즌 연속에 불과하다. 델 보스케를 넘어 레알 마드리드 역대 2번째 최다 경기 지휘 기록을 경신한 지네딘 지단도 4시즌 연속 재임은 실패했다. 더불어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150승을 넘긴 감독도 357승의 무뇨스, 211승의 안첼로티, 163승의 지단까지 겨우 셋뿐이다. 이렇게 국대 감독 갈아치우듯 감독이 잘려나가니 선수단의 일관성도 유지하기 힘들고 유스 운영에 힘을 주기는 더더욱 힘들어 돈지랄 구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 환경이었다.

12.2.1. 라몬 멘도사 재임기 [편집]

  • 1990년: 스완지 시티레알 소시에다드를 맡으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89년에 부임한 존 토샥 감독은 재임 첫 시즌에 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었으나, 2시즌 째인 1990-91 시즌 초반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가 경질된 데는 당시 팀의 주전이던 마놀로 산치스와의 갈등도 한몫했는데, 실제로 그가 1990년에 경질되고 나서 "산치스는 최악의 인간이다. 그를 만난 건 내 생애 최대의 불운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999년에 그가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 1991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두 번째로 감독직에 올랐지만, 1991년 1월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에게 지는 바람에 2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 1992년: 1989-90 시즌에 레알 사라고사를 5위까지 끌어올린 라도미르 안티치가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1991년 3월에 감독직을 맡았으나, 이사진이 레오 베인하커르 감독을 다시 영입하기 위해 경질했다.
  • 1992년: 레오 베인하커르가 이사진의 지지로 2번째 감독직 수행을 시작하나, 6개월 만에 무관으로 경질되었다.
  • 1994년: 알바세테 발롬피에를 2년 연속 승격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은 베니토 플로로가 1993년에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루었지만, 1994년 1월 8일에 바르샤를 상대로 호마리우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0-5로 지는 바람에 2개월 만에 경질되었고, 그 공백을 비센테 델보스케가 메꾸었다.

12.2.2. 로렌소 산스 재임기 [편집]

  • 1995년: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감독으로 시작하여 테네리페 감독 시절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고 UEFA 컵 진출권을 따낸 베테랑 지도자 호르헤 발다노가 1994-95 시즌에 라리가 우승을 이루어냈지만, 1995-96 시즌 초반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 1996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이끈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 감독이 1995-96 시즌 도중에 부임했지만, 시즌 막판에 챔스 진출 실패와 그 해 챔스 8강 탈락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그 공백을 또다시 델 보스케가 메꿨다.
  • 1997년: AC 밀란 출신 명장 파비오 카펠로는 그 해에 라리가 우승을 이끌어냈으나, 경기 내용이 지루해서 경질되었다.
  • 1998년: 32년 만에 챔스 우승을 이끈 유프 하인케스 감독 역시 시즌이 끝나고 경질되었다.
  • 1999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4강까지 진출시킨 거스 히딩크 감독 역시 엘 클라시코에서 1무 1패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시즌 도중에 경질되었다.
  • 1999년: 존 토샥이 레알 마드리드에 복귀하나, 그해 11월에 경질되었다.

12.2.3. 플로렌티노 페레스 재임 1기 [편집]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2003년까지 4년간 감독직을 맡고 물러난 이후,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감독 경질 레이스가 다시 시작되었다. 애초부터, 페레스 회장의 갈락티코스 정책은 감독보다 슈퍼스타 선수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2.2.4. 라몬 칼데론 재임기 [편집]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물러난 뒤 칼데론이 취임하여 효율적인 선수단 운영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감독에 대한 인내심은 커지지 않았다.
  • 2007년: 파비오 카펠로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 복귀하여 라리가 우승 타이틀을 따냈지만, 1996-97 시즌 때와 같은 이유로 경질되었다.
  • 2008년: 전 헤타페 CF 감독 베른트 슈스터도 2007-08 시즌에 라리가 우승 타이틀을 따냈지만, 2008-09 시즌 도중에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69]

12.2.5. 플로렌티노 페레스 재임 2기 [편집]


이후 주제 무리뉴가 2010년부터 3년간 연속으로 유임하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역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며 2017년까지 계약 연장이 될까 싶었지만 2014-15 시즌 종료 후 목이 날아갔다. 그렇게 새로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 라파엘 베니테스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대패해 경질설이 올랐다가 결국 발렌시아 원정에서 2-2 무승부로 결국 경질되었다.

그 후로 팀의 레전드 지네딘 지단이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처음에는 감독 경력이 부족한 지단의 선임에 대한 의구심도 많았지만 첫 2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라리가 우승 1회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는 반등에 성공한다. 2017-18 시즌에는 초반기에 역대급으로 부진했으나, 다행히 나중에 페이스를 회복하고 챔스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역대급 업적을 이루면서 모가지 걱정은 덜게 됐다. 그러나 이번엔 지단이 스스로 사임했고 후임으로 스페인 대표팀의 훌렌 로페테기 감독이 내정되었다.

로페테기 감독은 2018 월드컵까지만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물러나며 월드컵 직후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한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스페인 축구 협회는 월드컵 개막을 2일 앞두고 로페테기 감독을 경질하는 초강수를 둔다. 그 후임이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선수였던 페르난도 이에로인데 이에로는 초보 감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하고 16강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로페테기의 레알 감독 부임이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그가 국대 감독 계약을 연장한 지 단 3주 만에 레알 마드리드 후임 감독 협상을 하고 이를 축협에 일방적으로 보고해 축협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페테기는 리그 10R 엘 클라시코 1-5 대패로 인해 첫 시즌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으며, 카스티야 감독이던 산티아고 솔라리가 이를 대신해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다가 9위까지 떨어진 순위를 2위로 올리는 등 성적이 좋아져서 정식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그리나 솔라리 역시 같은 시즌에서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AFC 아약스한테 1-4로 대패하고 합산 3-5로 탈락하자, 결국 경질되고 지네딘 지단이 돌아왔다. 즉, '2017-18 시즌 종료 이후 지단 사임→2018년 여름 로페테기 선임→2018년 10월 로페테기 경질→2018년 11월 솔라리 선임→2019년 3월 지단 복귀 및 솔라리 경질'이 되어서 한 시즌에만 무려 2번이나 감독을 교체하게 되었다.

12.3. 스페인 대표팀과의 관계 [편집]

2000년대 후반 이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는 레알 마드리드의 찬란한 역사에 비하면 매우 초라했다. 스페인 국민들은 축구 국가 대항전에 열광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국제 경제 제재와 프랑코 독재 정권이었다. 스페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연합국 사이를 오락가락한 행보 때문에 종전 후 준추축국 취급을 받아 서방으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았고, 유엔 활동을 극도로 제한당하는 등 수십 년간 국제 왕따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70] 스페인에 세계가 허용한 단 하나의 국제 행사가 바로 축구라서 당연히 월드컵 성적은 스페인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각종 국제 대회에서, 20세기 세계 최고의 클럽 1위에 선정될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의 성과는 뛰어났고, 이 선수들이 주축이 되는 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국제 대회의 왕관이라 볼 수 있는 FIFA 월드컵 우승은 스페인 국민들의 숙원이었다. 문제는 그 대단한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 중심의 대표팀이 근 70여 년간 월드컵 우승 0회, 유로 우승 1회의 부진한 성적을 써버린 것이다.

경기 외적 요인으로 허무하게 탈락한 적도 있다.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0에서 프랑코가 앙숙 관계인 소련에서 경기를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8강에서 소련 상대로 경기를 치르질 못해서 광탈해버렸다. 해당 대회 우승팀인 소련의 스카우터들이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대해 압도적인 선수단이라 평가를 내리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 대해 역대 최고의 센터 포워드라는 평가를 내렸다는 면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0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이 스카우터들의 평을 들은 소련 축구 협회는 충격에 휩싸였다고 하는데, 스페인은 경기도 하지 않고 광탈을 해버렸다. 이 잘못은 유로라는 대회의 상징성을 무시한 프랑코의 실수였다. 파시즘공산주의의 대립을 너무 신경쓴 결과 이런 처참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다음 스페인에서 개최하게 된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는 프랑코가 적극적으로 파시즘 홍보에 사용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결승전에서 귀빈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볼쇼비키를 상대한 부통령을 부른 것이다. 베르나베우 경기장의 120,000명의 관중이 프랑코를 연호한 것 역시 덤이었다. 결과는 76분 레알 사라고사의 마르셀리뇨의 결승골로 스페인이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FC 바이에른 뮌헨이 앞장선 독일, 유벤투스 FC, AC 밀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가 이끈 이탈리아가 각각 4회나 월드컵 우승을 들어올리며 축포를 쏘는 광경을 스페인 국민들은 오랜 기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만 봐야 했다. 당연히 스페인 내부에선 "우린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이라는 레알 마드리드와, 유수의 명문 클럽이라는 바르셀로나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왜 월드컵 성적은 이 모양 이 꼴이지?"란 질문이 끝없이 쏟아졌다. "두 클럽 사이의 지나친 라이벌리 때문에 하나의 팀이 안 되는 것이다", "그냥 우린 마가 끼었다" 등 온갖 원인을 분석하는 칼럼도 쏟아졌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의 선수단이 전성기에 올라 처음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밀어내고 국대의 주축이 되었는데, 바로 메이저 대회 3연패의 역사를 써버렸다.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조차도 바르셀로나 선수단과 점유율 축구 전술을 그대로 뜯어 국대에 이식하고는 국가 대항전에서 성과를 냈다. 이에 스페인에 밀려 우승을 놓친 네덜란드 언론들과 영국, 독일 언론들은 스페인 국가 대표팀을 향해 "스페인이 월드컵을 우승한 게 아냐. 카탈루냐가 스페인 국기 아래 우승한 거지"라는 기사를 잔뜩 실었다. 반스페인 감정이 거센 카탈루냐 언론들이 옳다구나 하고 월드컵 우승 후 바르셀로나에 줄줄이 내걸린 카탈루냐 독립 깃발과 함께 이런 해외 기사를 줄줄이 실어 스페인을 조롱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브라질 월드컵 바로 직전인 20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챔스와 코파 델 레이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리그를 우승해 바르셀로나는 간만에 무관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예상을 깨고 가장 먼저 탈락하여 문제가 되었다. 월드컵 직전 시즌의 성적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 스페인 팀에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전년도보다 높은 비중으로 들어갔는데,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많았던 이전 대회와 달리 성적이 나빴다는 것이다.

다만, 우선 이는 사실이 아니다. 폰치노바 쇼크라 불리는 네덜란드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 선발 명단에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는 3명이었고, 아틀레티코 선수는 디에고 코스타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바르셀로나 선수는 무려 5명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참패는 이미 챔피언스 리그에서 여러 번 분석된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 전술을 주입하고는 중원에만 노쇠화된 바르셀로나 주전을 쓴 비센테 델 보스케의 이도 저도 아닌 전술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스페인은 최전방에 디에고 코스타를 두고는 중원엔 2010년도의 노쇠화된 주전을 대거 배치했는데, 코스타는 아틀레티코와 첼시 FC를 거치며 선수비 후역습 전술에 최적화된 스트라이커이지, 공간 창출에 능한 공격수나 폴스 나인은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BBC라고 불리는 외국인 공격진이 이끄는 빠른 역습으로 빼어난 성적을 기록한 것이지,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이후 후방 빌드업을 중요시한 레알 마드리드의 스타일이나 티키타카와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이 당시의 선수단 대부분이 스페인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 그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확실한 스페인인 주전은 이케르 카시야스, 세르히오 라모스, 다니 카르바할, 샤비 알론소 4명뿐이었다. 아틀레티코 역시 마찬가지로 티키타카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스페인이 90분간 제대로 한 거라곤 티키타카에 익숙한 중원에서 볼을 돌리며 점유율을 높인 것뿐이었다. 네덜란드의 루이 판할 감독은 공을 뺏을 때마다 정확한 롱 볼로 빡빡한 스페인 중원을 제쳐버리고 전방의 발빠른 아르연 로번로빈 반 페르시에게 전달하여 스페인의 뒷공간을 털어먹을 것을 지시했고, 폼 떨어진 카시야스와 정신줄 놓은 수비진 때문에 이게 기가 막히게 먹혀들어가 5골이나 허용해버렸다.

따라서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이 온전히 레알 마드리드의 탓이라고 주장을 한다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 스페인 국가대표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압도적 행보는 바르셀로나가 2000년대 후반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도 분류될 수 있는 팀을 보유했기에 일어난 일이다. 거기에다가 그 팀의 중심은 역시 차비와 이니에스타로 대표되는 스페니시 코어였다. 세상에 그 어떤 감독이나 축구 협회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역대 최강의 팀이라 불리는 팀의 전술과 선수들을 택하지 않고 대항전에 나가겠는가? 그리고 당시 주장이었던 카시야스가 레알 마드리드 출신으로서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간의 케미스트리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카시야스는 역대 주장들과 비교했을 때 당시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유달리 잘 지내기로 유명했기 때문.

레알 마드리드의 유럽 대항전 황금기는 3번 정도 있었다. 그 시기는 레알 마드리드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유러피언 컵 5연패 우승을 이루던 시절, 갈락티코스 1기 시절, 그리고 지네딘 지단 부임 시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네딘 지단 부임 시절은 남아공, 브라질 월드컵 후라서 일단 제외를 하자. 유러피언 컵 5연패는 프란시스코 헨토와 같은 스페니시 선수들도 있었으나 엄연히 말해서 에이스는 스페인 출신이 아닌 아르헨티나 출신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헝가리 출신인 페렌츠 푸스카스였다. 그리고 그 스페인으로 귀화한 디 스테파노는 1954 월드컵과 1958 월드컵, 그리고 1956 유로마저 귀화와 관련된 규칙 때문에 못 나가게 된다. 이들이 활약할 때 1958년부터 월드컵에서는 펠레라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등장하면서 월드컵을 싹쓸이한다. 그리고 갈락티코스 1기의 중심은 라울 곤살레스를 제외하면 엄연히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 자국의 선수들이 아닌 외국인 선수들이다.

1950-60년대의 저승사자 군단보다 스페인 선수들의 비중 역시 적기에,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이 그대로 월드컵까지 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에 비해서 스페인 국가대표가 저조한 성적을 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 중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FC 바르셀로나만큼의 성적을 낸 레알 마드리드 스쿼드는 있을지언정 이들과 같은 스페니시 중심의 스쿼드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중심이 된 예전의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항상 저조한 활약만을 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성기에 버금가는 성적을 기록하면서도 스페니시 중심의 팀이었던 Yé-yé 마드리드는 1964년 유로 우승을 일구어냈다. 디 스테파노 역시 귀화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메이저 우승의 맛을 보았다. 1970년 브라질 대표팀이 월드컵 우승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대표팀 반열에 오른 것을 감안하면 스페인의 성적 또한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무대의 주도권을 완전히 AFC 아약스FC 바이에른 뮌헨에게 넘기게 되면서 갈락티코스 때까지 지금의 명성과는 조금 먼 팀이 된다. 예를 들어서 Yé-yé 마드리드 다음으로 스페인 코어가 주축이 된 독수리 오형제는 클럽 성적이 위에 언급된 시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결론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2010년대 이전의 빈약한 트로피 개수는 분명히 레알 마드리드라는 축구단의 위상에 비해 빈약하다는 것이지만, 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스페인 코어가 빈약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스페니시 코어의 전성기는 펠레의 등장과 겹쳤으며, 펠레의 월드컵 독주가 끝나자마자 아약스와 바이에른의 독주로 인해 네덜란드와 독일로 유럽의 패권과 월드컵이 바로 넘어가버렸다. 즉 전성기 시절 레알 마드리드 위주의 스페인 팀은 괜찮았으나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는 것이다. 갈락티코스의 주축이 외국인들이었다는 점 역시 이에 한몫한다.

2018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이스코가 스페인의 국가대표 에이스로 뛰면서 또다시 레알 마드리드가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될 기회가 왔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감독 줄렌 로페테기가 국가대표팀 감독직 재계약 체결 20여 일 만에 레알 마드리드와 물밑 접촉을 했다가 들통이 나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경질되는 막장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스페인 축구 협회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감독을 잘라버리는 초강수를 둔 것은 국내 비난 여론이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와 로페테기를 향할 것임을 뻔히 알고 한 일인데, 배신자 로페테기를 날려버림과 동시에 레알 마드리드가 사고 친 이번 기회에 파워 게임을 벌여 앞으로 앞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고분고분하게 만들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물론 겉으로는 "차후 스페인 감독으로 부임할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아픔을 감수하고 결단을 내렸다"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다.

사실 클럽에 소속된 선수를 빼내 부상 위험에 노출시키는 국가대표팀과 클럽 사이의 은근한 알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둘 사이의 파워 게임도 스페인만의 일은 아니지만, 물밑 작업을 하더라도 일단 안 들켰어야 했다. 스페인 국민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흔든 무책임한 감독 로페테기와 레알 마드리드에겐 당연히 범국민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성난 여론에 눌린 로페테기는 결국 해명 기자 회견을 열어 눈물을 쏟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밤"이라며 사과하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 역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고,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스페인 국민들의 화만 잔뜩 돋우었다. 급작스레 선임된 페르난도 이에로 감독의 스페인은 16강에서 한 수 아래인 러시아에 패하며 탈락해버렸고, 이런 대형 사고를 치면서까지 기어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 부임한 로페테기는 14경기 만에 역사적인 엘 클라시코 1-5 대패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경질당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처음으로 소집되는 9월 A매치 기간에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가장 많이 뽑히면서 대표팀에서 점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이 네이션스 리그에 대해 클럽 감독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데, 대표적으로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도대체 뭘 위한 대회인지 모르겠다. 이런 건 선수들 부상 위험만 높일 뿐"이라며 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국가대표팀 내 비중이 극도로 높아 피해가 그 어떤 클럽보다 막심하다. 또 현재 리그 성적이 좋지 못해 선수단의 피로도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의 국가대표팀 뒤통수 사건 때문에 당사자인 로페테기는 물론이고 천하의 페레스 회장조차 국가대표팀에 찍소리도 못하고 고분고분 선수들을 보내고 있다. 네이션스 리그로 지친 선수들이 돌아와 리그 성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 덤.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의 클럽 수뇌부에선 스페인 축협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이후 스페인 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루이스 엔리케가 부임을 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세르지오 부스케츠 달랑 한 명만 선발하면서 안 그래도 과중한 레알의 국가 대표팀 부담이 더 커져버렸다. 이젠 빈말로라도 레알 마드리드와 국대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상황까지 와버렸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엔리케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기용을 줄여버리면서 이 부담은 당분간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2026 FIFA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 최종 명단에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는 스페인 대표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만 대회 도중 마르크 쿠쿠레야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이번 대회 스페인 대표팀의 유일한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가 되었다.[71]

12.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의 관계 [편집]

인테리스타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구단은 다름 아닌 레알 마드리드였다. 일명 '믿고 쓰는 레알산', '우리 친구' 등의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 유독 레알 마드리드에서 부진했던 선수를 인테르가 영입하면 클럽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멋진 활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트레블의 주역 웨슬리 스네이더, 왈테르 사무엘[72],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인테르에서 부활한 선수들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르 팬들 중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꽤 많았고, 레알 마드리드 팬덤에서도 인테르가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르셀로나를 꺾은 바 있기 때문에 인테르의 이미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2018년 여름, 루카 모드리치 이적설로 두 구단 사이는 틀어지게 됐다. 모드리치의 에이전트가 인테르에게 먼저 모드리치에게는 자유 계약으로 풀릴 수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테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이었던 모드리치를 순순히 내줄 리가 없으니 일단 기다리면서 AS 모나코로부터 케이타 발데를 임대해 오는 것에 주력했다. 그리고 모드리치에게는 훈련에 무단 불참하면서 구단에 대들며 태업하게 유도하지도 않았다. 모드리치 본인도 일단 자신은 프로답게 전 팀과 좋게 이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 임대, 후 이적으로 하려고 했던 건 보상금 명목이었다. 당시 인테르가 UEFA FFP 룰 징계를 받고 있던 게 가장 컸다.

모드리치와 에이전트 사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인테르를 불법적인 사전 접촉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 그리고 FIFA는 인테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하여 사건은 일단락됐다. # 당연하게도 마드리디스타들은 발롱도르 유력 후보인 선수를 그냥 내줄뻔한것에 심기가 뒤틀렸고, 인테리스티들은 이제 기량 떨어질거같은 몇년 써먹지도 못할 32살 미드필더가지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냐며 마드리드를 비판했다.[73]

그래도 이후 아슈라프 하키미를 비교적 싸게 인테르에 내주는 모습을 볼 때, 구단 간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그냥 단순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다.[74] 다만 레알이 7년 가까이 모드리치를 더 써먹고 자유계약으로 인테르의 라이벌 AC 밀란으로 보내버린데에는 불만가지는 이들도 존재한다.

후에 레알은 인테르의 주전 덴젤 둠프리스를 20m 바이아웃을 질러 싸게 데려왔다. 이 과정에서 별 잡음 없이 무난히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12.5. 징크스 [편집]

  • UEFA 챔피언스 리그로 대회 명칭이 바뀐 뒤로, 결승전에서 패배가 없다. 총 전적은 9전 8승 1무로[75], 특히 유벤투스는 레알에게 3번이나 결승전에서 패하며 가장 많은 패배를 당했다.
  • 트레블을 달성한 적이 없다.[76] 챔피언스 리그에서 15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최다 우승 클럽이지만, 트레블을 완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라이벌 바르셀로나는 트레블을 두 번이나 달성한 것과 대비된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고작 1회인 셀틱,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도 트레블을 완성한 것을 보면 트레블과는 정말 인연이 없음을 알 수 있다.

12.6. 여담 [편집]

  • 최상위의 명성을 지닌 메가 클럽 중 하나이지만 전체적인 경기장 분위기는 다른 명문팀에 비해 그다지 열정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홈 팬들의 광기 어린 응원으로 인해 엄청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르셀로나스포티파이 캄 노우나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리버풀의 안필드,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르크, AC 밀란과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 비해선 응원이 조용조용한 편이다. 워낙 인기가 많은 클럽이라 관광객이 관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당연히 관광객들이 현지의 응원가를 모르기 때문에 응원 소리는 울트라스석에서만 들리는 편이다. 실제로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시절, 응원 좀 크게 해달라고 하소연했을 정도이다. 그 흔한 상대 팀 안티 콜도 거의 없고 경기 중에 응원가를 부르는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 중 부르는 대표적인 응원가는 'Como no te voy a querer'라는 노래인데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추가될 때마다 뒷부분의 가사가 우승 횟수에 맞춰 바뀐다. 최다 우승팀의 엄청난 자부심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 상대 팀, 심지어는 라이벌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네 팀을 상대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면 기립박수를 쳐주기도 한다. 미첼 살가도에 따르면 상대 선수를 대놓고 칭찬하여 자기네 선수들을 질책하는 의미인데 "야, 야, 레알 마드리드, 너네 병신같이 그렇게밖에 못하고 털리고 있냐?"라고 비웃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기립박수를 받은 선수는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 호나우지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있다.[77]
  • 공식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트로피를 들고 마드리드의 시벨레스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는데,[78] 팀의 주장이 광장을 꽉 채운 선수들과 서포터들 앞에서 중심부 분수의 시벨레스 여신상에 키스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런 관례로 스스로가 여신의 가호를 받는 클럽,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는 자부심을 고취하는 듯하다. 이 때문에 우승을 많이 이끌었던 라울 곤살레스는 '여신의 남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9-20 시즌에는 라리가 우승을 하였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위험 때문에 구단 차원에서 광장에 모이지 말아달라고 성명을 냈고, 실제로 팬들이 자동차를 타고 광장을 도는 것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만큼, 스페인 왕족 중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한창 잘나갔던 1950년대에는 라커 룸에 왕세자가 아무 때나 출입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현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다. 이외에도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79], F1 선수 페르난도 알론소, 톰 크루즈페넬로페 크루스,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인 플라시도 도밍고 역시 레알 마드리드 팬으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마찬가지로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는 바르셀로나의 팬이다.
  • 한국에서도 유럽 축구의 인기가 높은 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위상도 상당히 높지만, 의외로 밖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선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다. 한국 국적의 선수가 소속되어 있던 적이 없었던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주로 손흥민이나 이강인 같은 한국인 선수들이 소속된 팀들의 유니폼이 많고 김민재가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후로는 뮌헨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을 정도다. 또한 맨시티도 한국인 선수가 있는 팀은 아니지만 산뜻한 유니폼 디자인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토트넘과 비교하면 한국인 선수가 없는 이유가 큰데, 레알 마드리드 입단은 갈락티코스 정책으로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축구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거나, 선수 활동 중 엄청난 활약과 스타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선발 출전은커녕 입단 제의 보장도 어려운 편이다. 게다가 라리가는 선수단을 등록할 시 비유럽 선수 쿼터 제한이 존재한다, 이 쿼터 제한은 대부분 남미 선수에게 할당하기 때문에 웬만큼 활약한다 해도 아시아 선수가 들어가기는 더더욱 어려운 편이다. 재능 있는 선수가 넘치는 유럽과 남미 출신 선수들에서도 레알 마드리드 입단과 이후 주전 선발 출전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한국 선수의 레알 마드리드 입단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 전 세계의 축구 선수라면 한번쯤 입단하기를 꿈꾸는 드림 클럽의 첫 손으로 꼽히는 구단이며 이러한 점은 선수 영입에서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다른 구단이면 엄두도 못 낼 바이백 조항을 자존심 강한 PL 빅클럽에게까지 요구하며, 젋고 유망한 선수가 FA 이적이 임박하면 모두가 젊은 공짜 선수를 노리고 달려드는 치열한 경쟁과 FA 계약 조짐만 보여도 선수측의 소속 구단에서 좋은 조건의 재계약을 제시하기도 하는 등 이적 성사가 굉장히 어려운 FA 계약도 손쉽게 척척 해내는 편이다. 계약기간이 1~2년 남은 타클럽 선수에게 관심만 보내줘도 절대 다수의 선수들은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에 대한 환상 때문에 현 소속팀과의 재계약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으며 결국 계악기간 1년을 남기고 저렴한 이적료로 영입하거나 계약기간 종료 후 FA로 영입해오는 경우가 많다. 즉, 구단 측에서 이 선수를 데려오겠다는 강한 의사만 있다면 영입 경쟁에서 패배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른바 선수 영입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한 구단으로 이는 한 시대의 최고 슈퍼스타들을 막힘 없이 영입해오는 갈락티코스 정책의 원동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 2015년, 일렉트로닉 아츠와 3년간 독점 계약을 체결하여 위닝일레븐 2016부터 2018까지는 레알 마드리드를 수록할 수 없게 되었다.
  • 2016년 한국타이어와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경기 도중에 한국타이어를 홍보하는 배너를 볼 수 있으며 하프 타임에는 국내 TV에서 나오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모델로 나온 CF 영상이 그대로 경기장의 대형 스크린에 나온다.
  • 2023년 3월 10일에 Apple TV+를 통해 끝까지! 바모스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Until The End)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될 예정이다. 내레이션은 데이비드 베컴이 맡았고, 2021-22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여정 및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13. 논란 및 사건 사고 [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언사 [편집]

레알 마드리드는 금세기 최고의 팀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는 누구죠?)
레알 마드리드예요.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되지 않는 것은 감독 경력에 공허함을 남기는 것이다.[81]

레알 마드리드의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팀의 가치를 대표한다.

한 아이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9번이 되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시저스 킥을 할 거예요."[82]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 되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참으로 엄청난 유혹이다. 이미 한 번 해보았더라도 거절하기 어렵다.[83]

세계에는 많은 최고의 클럽이 있지. 그중에서도 레알 마드리드는 정상에 있는 하늘 같은 팀이야.

레알 마드리드는 축구라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다.

크리스토퍼 클라리[84]
레알 마드리드야말로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코카콜라와 같은 존재다.

아우구스토 세사르 렌도이로[85]
세계에서 가장 멋있는 훈장은 클럽 월드컵 훈장이 아니야. 레알 마드리드 휘장이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강팀에게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한 거죠. 레알 마드리드보다 강한 팀은 없으니까요.

레알 마드리드가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항상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

나는 2010년 전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30분을 뛰는 것이 다른 팀에서 90분을 뛰는 것보다 낫다.

나의 심장은 언제나 마드리드에 있다.

1억 유로? 그걸로 나의 마드리드를 살 수 없어!

우린 레알 마드리드다. 어떤 팀이라도 상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역사상 최고의 팀이다.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이 이 클럽의 DNA다.

레알 마드리드는 환상적인 클럽입니다. 그들이 저를 이기더라도, 항상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고 팔로우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닌, 일부에게만 허락된 특권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타이틀은 매일 레알 마드리드에서 훈련한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꿈이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판타지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는 곧 챔피언스 리그의 역사와 같다.

레알 마드리드의 소매에 괜히 숫자 13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항상 거기 있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신화적인 구단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이다. 스포츠에서 위대한 일을 성취하고 역사를 쓰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빅클럽이다. 모드리치는 나에게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클럽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클럽이며 그런 팀과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래서 누가 알겠는가, 아마 언젠가 내가 그곳에서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싶다.

모든 선수들은 절대적인 정상에 오르고 싶어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바로 절대적인 정상이다.

레알 마드리드. 그건 세계 최고의 팀.

레알 마드리드? 어떤 선수든 뛰고 싶어하는 곳이다.

축구 선수들에게는 꿈이 있다. 프리미어 리그가 될 수 있고, 레알 마드리드가 될 수도 있다. 선수들은 저마다 꿈을 가지고 있고, 많은 축구 선수들에게 레알 마드리드는 꿈.

라파엘라 피멘타[87]
PL 오퍼 거절한 이유? 전에도 말했듯이,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클럽이야. 최고의 클럽, 최고의 선수들, 최고의 팀이자 내가 배울 것이 많은 최고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왜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지 않았냐고? 레알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다. 만약 레알 마드리드에서 연락이 온다면 이적을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다.

AC 밀란이 아닌 다른 팀에서 뛸 기회가 있으면 어디서 뛰고 싶냐고요? 전 레알 마드리드를 선택할 겁니다. AC 밀란의 전통과 역사에 근접한 팀은 레알 마드리드가 유일하거든요.

브라질에서 레알 마드리드? 세계에서 가장 큰 팀으로 여겨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팀이자 축구의 정점이다.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가장 아름다운 클럽? 레알 마드리드.

가장 후회되는 것?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것.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클럽입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15. 관련 문헌 [편집]

  • 축구의 신화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 루이스 미겔 페레이라 저/윤승진 역. 보누스. 2014.

16.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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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56~1959-60 유러피언컵 우승 팀
창설
레알 마드리드 CF
1965-66 유러피언컵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1997-98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1999-00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2001-02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2013-14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2015-16~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2021-22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2023-24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

[1] Madrid Fútbol Club으로 창단 출처[2] 시민 구단이기 때문에 구단주는 없고 소시오(회원) 중에서 회장이 선출되는 방식이다.[3] 대한민국나이지리아, 스페인삼중국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선수라고 칭하는 게 가능하며, 속인주의에 의한 선천적 대한민국 국적자이다.[4] 레알 마드리드 마이너 갤러리[5] 스페인의 리그컵으로, 대회 포화 등 구단들의 반발로 4년 만에 바로 폐지되었다.[6]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전신[7] AC 밀란, CA 페냐롤, 클루브 나시오날 데 푸트볼, CA 보카 주니어스와 동률[8] 유러피언컵 출범 이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4개국의 리그 우승 팀들이 참가하던 국제 대회로, 1957년에 폐지되었다.[9] FC 바르셀로나, AC 밀란과 동률[10] 기본금 €103M+ 옵션 €24M[11] 5년 단위로 계산된다. 2위 기록은 FC 바르셀로나의 8회로, 타 구단과의 격차가 가장 큰 지표 중 하나이다.[12] 구단을 대표하는 레전드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13] 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리그 우승이었다.[14] '나아가자 마드리드, 더할 나위 없이'라는 뜻이다.[15] 플라시도 도밍고가 불렀다.[16] 레알의 홈구장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마드리드 차마르틴 지역에 있다.[17]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별명인 '금빛 화살(Saeta rubia)'에서 따왔다.[18] 돈치치는 팬이라기보다는 관계자에 가깝다.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출신이기 때문이다.[19] 이 트로피를 수상한 기념으로 2006-07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는 유니폼에 해당 트로피 디자인의 패치를 부착했다.[20] 유러피언컵 5연패,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포함한 15회 우승.[21] 2024년 12월 19일 기준으로 챔피언스 리그와 클럽 월드컵 등을 포함해 국제 대회 총 32회 우승으로 1위이고, 아프리카 축구 연맹 소속인 알 아흘리가 31회 우승을 기록하여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유럽 대회의 수준이 다른 지역의 대회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만큼 실질적 격차는 더 크다.[22] 최다 준우승은 7회의 유벤투스로, 레알 마드리드는 3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마저도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 이후에는 결승전에서 전승, 준우승이 없다.[23]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우승이 20회로 동률이지만 리버풀이 6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3회 우승했으므로 리버풀의 우승 횟수를 우선시한다.[24] 14회 / 리버풀 6회, 유벤투스 2회, 바이에른 뮌헨 6회.[25] 그래도 각 리그별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팀들로 합산하면 레알 마드리드보다는 많다. AC 밀란 7회,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이상 6회로 총합 19회가 되기 때문이다.[26] 다만 IFFHS에서 발표한 순위는 각 대륙들에 대해 따로 집계한 것으로, 정확한 타이틀은 20세기 최고의 유러피언 클럽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세계 최고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27] 한국 축구계의 레알 마드리드, 한국 야구계의 레알 마드리드, 여자 농구계의 레알 마드리드 등.[28] 비슷한 사례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7회로 역대 우승 2위에 빛나는 세리에 A의 명문 AC 밀란이 있다. 리그 우승 19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7회로 레알 마드리드보다 볼륨은 좀 작은 편이지만 축구사 최고의 강팀 중 하나인 밀란 제너레이션을 구축하고 수십 년을 유럽 축구의 강자로 군림한 강팀이었으나 이쪽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이 고작 5회밖에 안 된다.[29] 레알 마드리드는 라리가와 챔스에서의 압도적인 우승 덕분에 많은 기회가 있었다. 1957-58 시즌, 1961-62 시즌, 1979-80 시즌, 1988-89 시즌, 2013-14 시즌, 2016-17 시즌, 2021-22, 2023-24 시즌에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의 3개 대회에서 2개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트레블에 도전할 수 있었으나 다른 하나에서 미끄러졌고 결국 실패했다. 특히, 코파 델 레이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다.[30] 절묘하게도 레알 마드리드가 라리가와 챔스를 제패하던 시기와 코파 델 레이에서 선전하던 시기는 엇갈린다. 전자의 경우는 1950~60년대와 2000년대 초반, 2010년대 후반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1930~40년대와 1970~80년대다. 1955년 챔피언스 리그가 생긴 이래 레알 마드리드의 코파 델 레이 우승 횟수는 11회로 오히려 15회의 챔피언스 리그보다 횟수가 더 적다.[31]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은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이다.[32] AC 밀란이 1994년에 5회 우승을 달성하여 당시 6회 우승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와 역사상 처음으로 동률을 이룰 기회를 잡았으나, 이후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33] AC 밀란[34] 바이에른 뮌헨, 리버풀[35] AC 밀란 7회,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3회, 유벤투스 2회.[36] 바이에른 뮌헨 6회, 함부르크 1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회.[37] 리버풀 6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회, 노팅엄 포래스트 2회, 아스톤 빌라 1회, 첼시 2회, 맨체스터 시티 1회.[38] 2024-25 시즌 기준 28연속, 진행 중.[39] 유러피언컵 시기에는 디펜딩 챔피언 또는 자국 리그 우승 팀만 참가 가능했는데도 원년부터 1969-70 시즌까지 무려 15시즌 연속으로 참가해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40] 각각 5연속.[41] 2024-25 시즌 기준 28연속, 진행 중.[42] 8연속[43] 9연승, 진행 중.[44] 챔피언스 리그 개편 이후에 결승전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45] 2015-16~2017-18[46] 150명[47] 7명[48] 16번[49] 단, 조건을 다시 달성하기 전인 2009년에 영구 소장 규정이 폐지되어 현행 트로피까지 수여받지는 못했다.[50] 물론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라리가는 진행이 중단되었다.[51] 프랑코 반란군 세력으로 추정되지만, 누가 죽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52] 수뇰의 시체가 발견되는 데는 50년의 세월과 '수뇰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카탈루냐 민족주의 단체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53] 단적으로 바르셀로나의 2대 회장이자 최초의 카탈루냐인 회장인 바르톨로메우 테라다스는 카탈루냐 축구협회장도 겸임하면서 사재를 동원해서 RCD 에스파뇰의 창단에 재정적 지원을 했다.[54] 혹은 귀족명 라 메사데아스타 후작.[55] 프랑코 정권의 비호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어려우나 실제로 21년 무관까지 겪은 레알 마드리드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프랑코보다는 회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활약이었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시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라파엘 산체스 게라는 대표적인 공화주의자라서 프랑코의 정적이었고 내전 이후 감옥살이(원래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내전 중에 공화국 지역의 우익들을 숨겨주어서 사형은 면하고 종신형이 선고되었다)를 겪고 훗날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1959년에 돌아와서 1964년에 사망했다. 부회장과 재무 담당자도 같이 죽었고, 후임인 후안 호세 바예호와 안토니오 오르테가 역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특히 오르테가는 바르셀로나의 조제프 수뇰 같은 공화주의 좌파라서(공화군 소령이었다) 내전 이후 군사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했다. 또한 프랑코의 독재가 가장 심했던 초기 시기 동안 베르나베우는 런던으로 도망쳐 변호사 생활을 해야 했다.[56] 디 스테파노 사건 이전이긴 하지만 주제프 사미티에르 같은 인물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 생활을 모두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선수 - 레알 마드리드 선수 - 바르셀로나 코치 - 레알 마드리드 코치 - 바르셀로나 이사 이런 식으로 살았다. 그래서 별명이 '왕복 비행기'였다. #[57] 당시 주장은 펩 과르디올라였다.[58] 경기 전에는 서로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고 격려도 하지만 2010년 바르셀로나의 5-0 대승 당시에 라모스가 메시와 푸욜, 사비를 밟고 때렸던 것처럼 승부에서 지면 난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59] 반면 잉글랜드는 대표팀에서마저 라이벌 의식이 매우 뿌리깊게 박혀있는 탓에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의 지휘로 4강에 진출하기 전까진 월드컵에서 매우 무력했다. PL 중원 삼대장으로도 불렸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폴 스콜스 셋은 이 때문에 최악의 케미를 보여줬다.[60] 참고: 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61] 스페인의 리그컵.[62]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전신.[63] 2015년 5월 23일[64] 2014-15[65] 2014-15[66] 1960-61[67] 2013-14[68] 1960~1974, 라리가 우승 9회, 유러피언 컵 2회[69] 베른트 슈스터는 시즌 도중 "바르셀로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라며 시즌을 포기하는 듯한 뉘앙스로 인터뷰를 한 바 있는데, 정황상 이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70] 사실 스페인은 2차 대전 참전만 안 했을 뿐, 추축국과 긴밀한 연관을 맺었고 스페인 정부는 의용군을 보내 암암리에 나치 독일을 지원했다. 이 때문에 소련은 기갑부대로 아예 스페인을 짓눌러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전쟁에 지친 미국과 영국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스페인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를 약속하고 스페인 침공을 뜯어말렸다. 물론 스탈린 역시 영미가 스페인 공격을 결사반대할 걸 뻔히 알았다. 소련에서 스페인까지 기갑부대가 진격하면 온 유럽이 소련군 치하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므로 이렇게 주장했다. 당연히 소련도 영미를 동시에 상대할 만한 국력 따위는 없었고, 파시스트를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영미를 협박해 다른 지역에서 소련의 이권을 최대한 따내려는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 속셈은 제대로 먹혀서 영국과 미국은 동유럽이 홀랑 소련에 넘어가는 걸 묵인해야 했다.[71] 이렇다 보니, 스페인이 아닌 해외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스페인의 대표 클럽임에도 스페인을 응원하지 않는 모습이 많았다. 주로 팀 에이스가 있는 킬리안 음바페프랑스나, 주드 벨링엄잉글랜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브라질, 팀 레전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는 포르투갈 등을 응원했다.[72] 사무엘이 인테르로 왔을 때 같이 레알에서 온 선수가 루이스 피구산티아고 솔라리였다. 솔라리는 인테르에서 부진했지만 피구는 인테르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이고 은퇴했다.[73] 다만 모드리치는 그로부터 거의 5년가량을 정상 기량을 유지하다가 내려왔다. 그로 인해 굳이 모드리치 딜 가지고 뭐라하는 반응은 이제 사라졌다.[74] 그리고 브라힘 디아스맨시티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상황만 봐도 페레스의 레알 마드리드는 타 구단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페레스의 레알 마드리드조차도 사이가 안 좋은 구단이 있는데 발렌시아 CF파리 생제르맹 FC이다.[75] 2015-16 시즌 결승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우승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무승부이다.[76] 레알 마드리드 기준에서는 라리가, UEFA 챔피언스 리그, 코파 델 레이를 모두 우승할 경우로, 자세한 설명은 트레블 문서 참고[77] 프란체스코 토티도 유명하나, 토티는 뛰어난 활약을 해서 박수를 받은 게 아니라 후반전 막판에 교체 투입되면서 일종의 리스펙트를 받은 것이다. 해당 경기는 2015-16 시즌 챔피언스 리그 AS 로마전이었는데, 토티가 베르나베우를 방문하는 마지막 경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박수를 쳐준 듯하다.[78] 반대로 아틀레티코는 넵투노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래서 마드리드 더비는 시벨레스 여신과 넵투노 신의 대결로 묘사되기도 한다.[79]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삼촌 미겔 앙헬 나달은 바르셀로나에서 8년간 뛴 축구 선수였다.[80]바르셀로나 명예 회장이자 바르셀로나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토탈 풋볼을 필드에서 구현한 전설적인 선수가 치켜세운 것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위엄을 알 수 있다.[8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떠난 뒤, 기자가 왜 많은 팀 중 레알 마드리드로 갔냐는 질문에 답변[82] 아마 본인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얘기한 말인 듯하다. 우고 산체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9번이었고 시저스 킥의 달인이었다.[83]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회장 선거 재출마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84] 뉴욕 타임스 기자[85]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회장[86] 맨시티는 왜 UCL 우승이 어려운가라는 질문에[87] 축구 에이전트